OTT 서비스에 가입해 보느라 비용이 들긴 했지만, 줄거리치고 지금껏 봐왔던 학교폭력 드라마와는 결 자체가 달라 돈이 아깝지 않더군요. 학교폭력 전문가랍시고 이런 드라마를 안 본다는 건 직무 유기일 수 있고 또, 아내에게 직무 유기를 들먹이니 ‘등 짝 스매싱’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소년시대’ 드라마는 1989년 충청남도 부여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루라도 안 맞고 사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인 온양 ‘찌질이’ 병태(임시완 분)가 하루아침에 부여 ‘짱’으로 둔갑하면서 학교 일진들과 맞서는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소년시대’ 드라마가 다른 학교폭력 드라마에 비해 반가웠던 건, 콘텐츠가 지닌 ‘순한 맛’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숱한 학교폭력 드라마를 봐왔지만, 일부 드라마들을 보면 장면 장면들이 폭력적이고 엽기적이어서 여간 불편했던 게 아니었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학교폭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특정한 사건을 모티브로 해 온갖 폭력적인 장면들로만 몸집을 키워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드라마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청소년이 성매매 알선하고, 패륜을 저지르고, 펜타닐 마약을 사용하는가 하면 양귀비를 재배하는 드라마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매운맛의 절정을 보여줬던 건 바로 처참한 복수극이었고요.
문제는 이러한 드라마가 매운맛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중독성’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러한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조차 없어 매운맛을 감수하며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죠. 이렇다 보니 어느새 학교폭력 드라마는 잔인한 장면이 들어가지 않으면 시시해지고, 피해자가 복수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상한 드라마’가 된 듯 보입니다.
우리는 초고속 인터넷과 디지털 부품으로 조립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TV나 극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드라마와 영화 같은 기가바이트급 콘텐츠들을 디지털 사물로 손쉽게 볼 수 있게 됐죠. 요즘 시대를 가리켜 ‘드라마 과잉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더구나 OTT 서비스는 미디어 콘텐츠의 풍요를 가져오는 장본인이기도 하죠. 돈 주고 물을 사 먹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것처럼, 드라마를 돈 주고 사 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OTT 서비스를 가족 구성원끼리 공유할 수 있어 ‘가족 사랑’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얼마 전 용돈이 아니면 생전 연락 한번 않던 아들도 제게 “아빠, 사이트 아이디하고 비번 뭐야?”라고 물어와 마음이 울컥했죠. 부모는 이렇게라도 자녀가 톡 해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잘 아실 겁니다.
세계적인 미디어 평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허버트 마셜 맥클루언’은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습니다. 미디어는 ‘개인과 사회가 지닌 이야기들이 우리 자신의 확장 물이나 새로운 기술에 의해 등장하게 된 산물’이라고 주장했죠. 간단히 말해 미디어는 현 사회가 지닌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렇게 되면, 요즘 등장하는 학교폭력과 소년범죄를 다룬 드라마가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드라마 한 편이 지나친 연출로 사람들에게 잘못 전달한다면 우리 사회는 ‘긴장 사회’가 되고 또 부모와 아이는 불필요한 상상을 하며 불안에 뜰 수밖에 없게 되죠. 이건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우리는 이 또한 사회적 배려를 엉터리로 만드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폭력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 중에서도 일부 드라마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 게 사실입니다. 학생과 부모는 드라마를 통해 어떤 행동이 학교폭력에 속하는지 평소 몰랐던 정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특히,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고 말하던 어른들이 학교폭력 드라마를 통해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돌아보게 됐고 그 결과 학교폭력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건, 최근 들어 매운맛이 가득한 학교폭력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학교폭력 소재가 아닌 드라마에서도 굳이 학교폭력 장면을 끼워 넣어 흥행몰이하는 경우도 있죠. K 콘텐츠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만큼 드라마를 통해 해외 시청자들이 우리 아이들에 대해 어떤 시선을 보일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새해 처음 학부모가 되는 부모님도 있을 테고, 또 학년이 올라가 자녀가 새로운 학급에서 적응을 잘할지 긴장하는 부모님도 있을 겁니다. 특히, TV나 스마트폰 에서 학교폭력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니 학교폭력에 관한 불안도 적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주세요. 학교는 ‘숲’과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라는 숲을 바라보면 숲 자체는 여전히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교사, 학부모, 학생뿐 아니라 ‘다수의 힘’이 만들어 낸 결과죠. 비록 ‘학교폭력 피해 경험률’이 지난해 1.9%로 나타나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상승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학교폭력 드라마만 믿고 내 아이가 학교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 건 아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는 그러한 행동이 자녀에게 학교와 친구를 불신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향한 불안을 없애고 학교와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아이를 믿고 내 버려두는 것도 적절한 행동은 아닙니다. 부모는 학교폭력 드라마뿐 아니라 매일 스마트폰에서 보이는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를 살피고 재해석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미디어 콘텐츠가 아이의 성장에 도움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건 꼭 필요한 행동입니다. 부모는 드라마 속 학교폭력 이야기가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잘못 쓰는 순간 피해자를 낳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