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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순영의 논술개런티]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많은 공산권 국가가 붕괴하면서 역사로 증명하고 있다. 이 같은 공산주의의 한계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물농장은 동물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인간 사회 구성과 체제에 관한 비판을 체계적이면서 치밀하게 담고 있다. 얼핏 아동용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아동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지 오웰은 왜 굳이 동물들을 등장시켜 사회적, 정치적 비판을 했을까? 이에 대해 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목적을 예술적 목적과 융합시키기 위해 우화 형식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물농장을 읽다 보면 작가의 말보다 더 많은 의도가 있어 보인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은 인간의 횡포에 저항해 혁명을 단행하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과 똑같아진다. 작가는 이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때 우화 형식은 더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괴물과 싸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괴물과 싸우는 동안 그와 닮아가는 것이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이 혁명할 때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 바로 인간과의 싸움에서 동물들이 결코 인간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간을 닮아갔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낳고 만다. 

 

또 혁명 후 지도부가 내세웠던 일곱 가지 계명이 어떤 방식으로 교묘하게 바뀌는 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가 이후에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로 변질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돼지들에게 속아 자신이 핍박받는 줄도 모르고, 죽도록 일하다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복서’의 운명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이는 국민이 정치를 외면하는 순간, 정부가 허울 좋은 말속임으로 국민을 농락하고, 이용하더라도 국민은 그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 작가가 살았던 구소련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상 사회를 구현하고자 출범했던 정부들이 변질되어 가는 모든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22년 미국에서는 ‘로 대 웨이드(Roe v. Wade)’ 법이 폐지되면서 연방법상 낙태가 불법이 됐다. 미국의 연방법은 대법관들의 표결에 의해 결정이 되는데, 보수진영의 대법관이 과반으로 넘어서 보수파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자 공화당은 이를 활용해 기다렸다는 듯이 법을 뒤집어 버렸다. 사실 공화당 전 대통령들의 낙태에 대한 초기 입장은 지금의 보수 공화당과 상반된다. 기존에 그들은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라며,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선거가 임박해오자 “어떠한 이유에서든 태아의 생명권 침해할 수 없다”라며 기존 입장을 철회해버린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인이 인기에 연연해 눈치로 정치를 하는 포퓰리즘적(Populism,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 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행태) 행동의 예로 꼽히기도 한다. 마치 동물농장 속 ‘나폴레옹’이 풍차 건설을 반대하고서는 “사실은 자신이 원래 하려고 했던 계획이었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동물농장에서 평등을 내세우던 돼지들은 자신들 스스로 ‘엘리트 계급’이 되어 특권을 누린다. 이 자가당착(自家撞着, 스스로에게 부딪힌다는 뜻으로, 자기 말과 행동이 앞뒤가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음을 이르는 고사성어) 의 상황에 대해 돼지들은 자기들은 편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무거운 책임을 지며 고단하게 살고 있다고 피력하며 권력을 합리화시킨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매번 반복된다.

 

이쯤에서 돼지들의 치부가 드러나나 싶은 상황에서도 늘 그들은 갖가지 권모술수로 위기를 모면해 간다. 게다가 돼지들은 정보를 통제하고 왜곡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동물들을 중상모략으로 처형하기까지 한다. 이는 러시아가 혁명 이후 국가가 부패해 가는 과정 그 역사적 사실만을 그려낸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유추적 상황이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동물농장에서 공동체를 위하며, 용감하게 동물들을 위해 싸웠던 지도층 돼지는 ‘스노볼’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나폴레옹’이 용의주도하게 만든 경찰 호위대인 개떼에 의해 축출당하고 만다. 이후 돼지들은 동물들 사이에서 존중받았던 스노볼을 깎아내리기 시작한다. 스노볼이 ‘외양간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운 사실도 왜곡한다. 스노볼은 인간 존스와 내통하면서 첩자 노릇을 해왔고, 그는 사실 알고 보면 동물들을 패배시키고 파멸시키려 했던 적이라고 말이다. 또 인간 존스가 쳐들어왔을 때 스노볼은 도망쳐버렸고, 존스의 다리를 이빨로 물어뜯었던 동물들의 영웅은 나폴레옹이었다고 이야기를 바꿔놓는다. 

 

나폴레옹은 실제 일어난 사건에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역할을 서로 바꿔 말하는 방식으로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만들어 낸다. 이로 인해 국민을 저버리고 자기 혼자 살고자 했던 권력자는 어느새 영웅이 되어버리고, 국민을 위해 힘썼던 지도자는 절대 악이 돼버리고 만다. 스노볼의 이야기가 왜곡돼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권력이 한곳으로 모여 장기화하고, 절대화됐을 때 어떻게 국민이 우민화되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잘못한 것을 덮어씌울 비난의 대상을 만들고, 이들에게 국민이 분노하게 만들면 격분한 국민들은 국가에 충성하게 된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모델이었던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Joseph Stalin 1919~1954)도 그러했다. 모든 정보를 통제 검열하고 국민이 진실을 접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차단해 자신들이 제공하는 거짓 정보를 현실로 믿게 했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런데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말을 단순화하자면 이는 곧 ‘동물농장은 불평등’하다가 된다. 말속에 있는 평등이라는 단어에 현혹돼 이것을 평등을 보장한 계명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겉만 번지르르한 말속에서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특별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라는 것과 ‘특권층에서 제외된 다른 동물들은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라는 속뜻을 읽어내야 불의한 권력이 휘두르는 횡포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생각해 볼 문제*

 

1.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2.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이 말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해 보시오.

 

3. 능력주의, 엘리트주의는 독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돼지들을 통해 이를 생각해보자. 

 

4. 권력은 왜 부패하는가? 

 

5. 독재는 왜 나쁜가?

 

[이순영의 논술개런티]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출처:조선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