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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럼에도 나는 '도전!' [에듀팡교육뉴스]

[에듀인뉴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의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한민국 교사 4人4色 재외한국학교 도전기’를 보건, 초등, 중등교사 순으로 소개한다. 첫 순서는 10년 간호장교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교직 생활 4년 차에 재외한국학교에 도전한 최미숙 보건교사의 이야기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상황이 열악해도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집을 구하고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그럴싸하게 꾸몄다. 처음 살아보는 복층 집을 남매는 다행히 좋아했다.


한국보다는 공간이 좁고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의 휴식처를 만들었다. 다행히 짐을 최소한으로 챙겨왔기에 공간이 좁아도 군더더기 짐이 없어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의식주가 해결되고 나니 학교 보건실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 건물은 크고 좋았지만, 유난히 보건실 시설과 장비는 열악했다. 다행히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께서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하여 보건실을 1년 만에 부분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갖춰진 한국의 보건실이 그리웠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즐기며 보건실을 개선해 나갔다.


누군가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중국 생활이 순탄하게 흘러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보건실 운영에 제일 중요한 약품 구매 진행 절차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나빠지면서 한국약품 수급이 어려워졌다. 중국 생활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 중국 현지에서 한국약품을 구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도움을 구했다. 다행히 한국 마트에서 약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학교 주변의 한국 마트 한 곳과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의 거리의 한국 마트를 주말에 방문하여 몇 달을 버틸 약품을 구할 수 있었다.


약품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을 겪으면서 보건실 약품의 현지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정보를 찾던 중 중국 상해 한인회 커뮤니티에 공유된 중국 내 수입 약품 목록을 발견했다. 상해의 한국인 의사분이 교민들을 위해 만든 배포용 자료였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안정성이 보장된 오리지널 수입 약품의 중국어 이름을 찾아 90% 정도의 약품을 현지화할 수 있었다.


중국내 구입 가능한 상비약목록 일부.(출처=주상하이총영사관)
중국내 구입 가능한 상비약 목록 일부.(출처=주상하이총영사관)

나의 역량에 한계를 느껴도



중국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이 알레르기 반응으로 기도 부종이 발생한 것이다. 쉰 목 소리를 내며 호흡의 불편감을 느껴 보건실을 방문하였다.


기도 부종은 알레르기 반응 중에 제일 위험한 상황이다. 바로 치료 약물을 주사 처치하지 않으면 기도가 폐쇄되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초응급 상황이었다.


다행히 학교 앞에 보건소가 있어 통역을 해줄 분과 함께 진료를 무사히 마치고 주사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학생이 호전되는 모습을 보며 안심을 했지만, 그날 이후 중국의 응급의료시스템을 파악하고 학교 주변 병원 정보와 국제병원 정보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사를 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만 나왔다. 한국의 공공 의료시스템이 세계 최고의 수준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한국과 비교해 중국 의료시스템의 제일 큰 차이점은 120(우리나라의 119)이라는 구급차 운영이 유료라는 것이다. 한 번 출동에 사용료가 한국 돈으로 4~5만 원 수준이었다.


비용을 떠나 언어 소통의 문제로 응급상황임에도 구급차 호출을 꺼리는데 비용까지 지급해야 하니 쉽사리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또 다른 차이는 종합병원의 경우 만14세 미만의 소아·청소년은 아동병원에서만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일반 종합병원은 만 14세 미만의 경우 CT 촬영과 같은 검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항목이 있어 아동병원으로 다시 후송된다.


유료 구급차 시스템과 한국과 다른 의료체계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초기에 수습하지 못해 질병의 상태는 나빠지고 한국을 방문하여 큰 수술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중국 현지 상황을 알아갈수록 학생, 교직원, 교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한계가 느껴져 의기소침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만 했다.


1학기가 마무리될 무렵 다양한 응급사례를 경험하며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학교 의료안전, 나아가 교민사회의 의료안전을 위해 대련지역의 병원 안내와 이용절차에 대한 의료가이드북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교민들을 위해 필요한 무엇 하나라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침 난 중등 ‘생명 지킴이’ 학생 동아리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 학생들은 대부분 의료 관련 분야 진로를 꿈꾸고 있었기에 함께 의료가이드북 제작을 하면 더 뜻 깊은 활동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우린 주말마다 현지병원을 방문하여 진료 절차 확인 및 응급실 위치와 이용방법 등을 탐방 조사했다.


대련지역 의료기관 탐방 조사.(사진=최미숙 보건교사)
대련지역 의료기관 탐방 조사.(사진=최미숙 보건교사)

교장 선생님께 우리의 활동을 말씀드리고 의료가이드북 제작을 위한 예산 지원을 부탁드렸다. 마침 한국에서 교직원 안전동아리 공모 신청에 관한 공문이 도착하여 그것을 통한 예산 확보를 제안해 주셨다.


사제연합 안전동아리 활동이라는 주제로 공모에 당선되어 넉넉한 예산을 바탕으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려 ‘대련지역 의료안전 가이드북’을 발간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안전교실 구축, 학부모 안전 아카데미(성교육·안전교육) 운영, 사제 연합동아리 심폐소생술 시범 및 교육, 학부모 참여 성교육 활동(생리대 주머니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동아리 학생들과 제작한 대련지역 의료안전 가이드북.(사진=최미숙 보건교사)
동아리 학생들과 제작한 대련지역 의료안전 가이드북.(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추진과정 중에 한계와 어려움이 많았지만 ‘대련지역 의료안전 가이드북’이 발간되고 그것이 지역사회에 쓰이는 모습을 보며 크나큰 보람과 감동이 밀려왔다.


의료안전 가이드북이 발간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교장선생님이 보건실을 방문하셨다.


“보건 선생님, 어제 교직원 안전동아리 우수사례 공모전 관련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우리 활동을 우수사례에 제출해 보는 건 어떨까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활동이었습니다.”


‘우수사례 공모전이라고?’ 공모전 도전에 경험이 없어 망설이고 있던 차에 초등 교감 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며 한 번 같이 해보자고 북돋아 주셨다.


나는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며 1년간의 활동을 보고서에 담아냈다. 교감 선생님도 함께 야근을 해주시며 필요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큰 상은 아니더라도 함께 활동한 여러 선생님과 학생들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커졌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모전을 주최한 학교안전공제중앙회 담당자가 국제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이번 공모전 최우수상입니다. 수상을 위해 메일로 보내드린 양식 작성하셔서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상상도 못 한 결과였다. 한국학교와 재외 한국학교를 통틀어 1등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함께 의료안전 가이드북을 만들었던 학생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본인들의 활동에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입시에도 진로 관련 활동 증빙 자료로 제출하여 입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럼에도 도전!



어느덧 시간은 흘러 나의 재외 한국학교 도전기를 마무리할 때가 왔다.


3년간의 재외 한국학교 생활을 뒤로하고 귀임한 지 1년의 세월이 지났다. 재외 한국학교 선발 공고와 마주한 순간부터 오늘까지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글로 만나면서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두 달간의 글쓰기 여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글을 쓰며 시간의 한 점에서 울컥하기도 하고 실없이 껄껄거리며 웃기도 했다.


추억 속에 함께 했었던 동료 교사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대련 한국국제학교 학생들이 떠올라 그리움이 커졌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때의 시간 속에 그리고 현재도 변함없이 나의 결정을 따라주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크게 느껴진 날들이었다.


북경 여행 중 천안문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사진=최미숙 보건교사)
북경 여행 중 천안문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사진=최미숙 보건교사)

코로나 19 상황으로 2020년 이후 재외 한국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해외 현지에 발이 묶인 상황이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한국 입국 후 격리 기간과 줄어든 항공편 등으로 한국을 쉽게 왕래할 수가 없다.


타국에서 재외동포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힘든 날을 버텨내고 계실 재외 한국학교 모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디 소중하고 그리운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어서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글의 마지막 문단을 시작하며 돌아보니 계획대로 하지 않았던 것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도전을 두려워하며 ‘나중에’, ‘다음에’라는 흐린 말들로 인생을 채우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여행자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누군가가 나에게 그때의 시작으로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당당히 말하고 싶다.


“상황이 나빠도, 내 역량이 부족하다 느껴도 , 누군가가 그건 아니라고 말려도, 그럼에도, 도전!”이라고….


# 최미숙 보건교사의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도전기를 마칩니다. 좋은 경험 나눠 주신 최미숙 보건교사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
최미숙 전 대련한국국제학교 보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