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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순영의 논술개런티] 맬서스는 왜 죽을 때까지 악담을 들어야만 했을까?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은 교만한 학자가 내놓은 오류투성이인 경제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론

학계의 이론이 이렇게까지 악의적인 평가를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인구론은 윤리 도덕적인 문제와 결부가 되면서 악명이 높아졌다. 실제로 맬서스는 가난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냥 굶어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인류의 재앙을 막는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이 때문에 당대 영국에서 시행하려고 했던 ‘빈민구제법’ 발목을 잡았다. 이로 인해 맬서스는 죽을 때까지 사람들의 악담을 들어야만 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이를 방치할 경우,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과 위생 악화, 질병, 전쟁 등과 같은 전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인구 과잉의 상태가 임계점을 뛰어넘지 않도록 저소득층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신이 만든 세상의 섭리고, 인류가 살길이라면서 인구 제한에 차별적 요소를 적용, 부도덕한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맬서스의 주장과는 다르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인구절벽’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을 정도로 인구감소가 우려되고 있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 비료 등의 발전으로 생산 기술이 증대하면서 인류는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맬서스의 이론은 ‘세기의 독설’ ‘사기’가 돼버렸다. 

 

오늘날까지도 맬서스를 신봉하는 맬서스주의자들은 그의 이론을 저소득층과 제3세계 국가를 향한 차별적 태도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저소득층과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이 생각 없이 아이만 많이 낳고, 게으르기 짝이 없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공격한다. 이는 다시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를 돕는 일이라는 궤변적 논리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회 빈부 격차에 따르는 불평등을 합리화하고 빈곤은 사회구조 때문이 아닌 빈곤층의 무능 탓으로 국한 시켜 사회와 지도층을 면책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맬서스의 인구론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반인륜적인 만행도 합리화시키는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인구론은 하나의 이론이 특정 엘리트 혹은 부유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쓰일 때 어떻게 악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났던 대학살도 예외는 아니었다. 르완다 대학살은 후투족 출신 쥐베날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탑승하고 있던 비행기가 격추된 다음 날 시작됐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후투족이 나머지 투치족을 학살한 사건이다.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백 일 동안 약 백만 명이 살해됐다고 한다. 이 수치를 분석하면 하루에 만 명, 한 시간에 4백 명, 1분당 7명이 살해당한 꼴이다. 

 

르완다 대학살은 사실 정치 엘리트 집단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되고 자행된 비극이었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대학살을 저지르면서 이것이 토지 재분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인구 과잉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합리화한 것이다. 국민 각자가 토지를 적당량 제공 받기 위해서는 전쟁은 불가피하며 오히려 이런 과정을 한 차례 겪어야 인구도 감소하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으며, 향후 기술 발달이 이뤄진다고 국민을 현혹했다. 

 

또한 인구 과잉이 정치적인 문제들이 병합되어 사회 붕괴가 일어나면서 전쟁 혹은 대학살과 같은 재앙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일축했다.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르완다인들은 “국가가 할 일을 했네.”라며 순응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부정부패와 인권 탄압을 일삼는 권력이나 기득권 세력에게는 맬서스의 경고는 달콤할 수밖에 없다. 온갖 나쁜 짓을 하다고도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아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게 만드는 묘법이 되니 말이다. 사람들을 순한 양처럼 만들기 위해 그들의 두려움을 작동시키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맬서스주의자들이 쓴 ‘성장의 한계’라는 책의 서문에는 ‘연못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 수련이 하루에 두 배로 늘어나는데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덮였다. 아직 반이 남았다고 태연할 것인가? 연못이 수련으로 뒤덮이는 날은 바로 그다음 날이다.’라며 인구증가에 대해 충격적인 경고를 던져 놓는다. 그러나 우리는 불의한 지배 세력이 선동하는 파국적 예언이 동요돼서는 안 된다. 맬서스의 망령이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합리화하는데 결부되는 순간 르완다 대학살 같은 비극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인구증가는 전쟁을 일으킨다는 논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 맬서스의 이론의 오류는 무엇인가?

3. 맬서스의 인구론이 왜 기득권 세력에게 반가운 소식이 되었을까?

4. 특정 부당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합리화하는 이론은 왜 나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