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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민수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부모가 책을 읽으면, 자녀는 안전합니다

예전 우리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보통 ‘취미’ 항목에 쓸 게 없으면 ‘독서’를 적곤 했습니다. 한때는 국민 취미가 독서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죠. 지난 4월 23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World book day)’이었습니다. 책을 끼고 사는 저도 책의 날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4월 23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햄릿’의 저자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유네스코가 ‘세계 책의 날’을 지정한 건 ‘책 좀 많이 읽자’라는 선언적 의미로 보이죠.

 

 

시작부터 책에 관해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책 이야기가 죄송할 일인가 싶지만, 유튜브 같은 동영상 미디어가 대세인 마당에 누구나 “굳이 책을?”이라고 말하게 되죠.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2023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면 지난해 일 년 중 책 한 권 이상 읽는 사람의 비율이 10명 중 4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지표는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을 통틀어 나온 결과고, 종이책만 놓고 보면 10명 중 3명에 불과하더군요. 실제 대한민국 독서율 추이를 보면, 2013년까지는 10명 중 7명이었다가 코로나 기간에 대폭 감소하면서 지금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지금까지 통계는 책 한 권을 기준으로 조사한 내용이고요. 1인 독서량을 따지면, 읽는 사람은 일 년 중 꾸준하게 14.5권 이상을 읽지만, 책 읽는 사람이 안 읽는 사람으로 돌아선 비율이 꽤 높아져 책 읽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는 것도 이번 조사의 주요 특징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부모님 중에서도 생각이 많으실 겁니다. 아이들에게 책 좀 읽자고 수없이 이야기하면서도 통계를 보면 정작 부모님들이 책을 안 읽는 것으로 나왔죠.

 

 

그럼, 아이들의 독서율과 독서량은 어떨까요? 이번 조사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독서율은 성인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하게 10명 중 9명의 아이가 책 한 권 이상 읽는 것으로 나타났죠. 하지만 이 통계를 두고 우리 아이들이 실제 책을 많이 읽는지는 의문이 들죠. 독서가 학교에서 요구하는 숙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부모님들도 잘 아실 거고요. 특히, 아이들의 독서량이 10년 전에 비해 20% 이상 감소한 걸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문해력’에 대해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문해력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죠. 교과서든 소설이든 형태소가 나열된 문장을 파악하고 알아듣는 역량을 말합니다. 그럼, 질문을 해볼까요? 우리 자녀의 문해력은 어느 정도 될까요.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제 학업성취도 조사’와 별개로 각 나라 청소년의 문해력을 알기 위해 OECD 국가의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범죄성 메일을 보내 내용을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살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대한민국이 콜롬비아보다 더 낮은 최하위권을 기록했죠.

 

 

자녀 세대를 기준으로 세상을 둘러보면, 아이들 일상에는 꽤 많은 ‘문장’이 펼쳐져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즐겨하는 SNS는 수없이 많은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단문의 게시글들을 보여주죠. 우리는 이런 게시글 문화를 가리켜 ‘3줄 요약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게시글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죠. 특히 댓글은 그나마 분량이 적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신조어가 득세하고 아이들의 언어가 부모 세대와 ‘구별 짓기’ 하면서 언어의 변형이 ‘뜻’ 자체를 바꾸고 있어 아이들이 정확한 문해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에 특별한 언어가 되어버린 ‘이모티콘’도 한몫하고 있고요.

 

 

중요한 건, 부모는 아이들이 수많은 문장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하면 일상에서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범죄자가 만든 언어 게임에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범죄자들이 아이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접근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걸 여러 번 목격한 경험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다리, 달팽이, 홀짝 같은 단어를 사용해 아이들을 도박에 끌어들이고, 사탕, 작대기, 나비약 같은 단어를 사용해 마약에 끌어들였죠. 또, 대리구매를 ‘댈구’라고 부르고, 대리 입금을 ‘댈입’이라고 부르며 마치 별거 아닌 듯이 아이들에게 술, 담배와 불법 돈거래까지 부추기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요즘 아이들이 욕을 찰지게 하는 이유 또한 단어가 딸려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프랑스 유명 정치가이자 법학자인 볼테르가 한 말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는 문해력이 학습 효과는 물론이고 사소한 갈등과 범죄를 예방하는 힘을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부모님이 하는 잔소리와 훈육이 아이에게 효과가 없었던 건, 결국 아이들이 부모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죽하면 제가 아이들에게 “넌 이지적이야”라고 말하면 아이는 제게 “대장님, 저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또 “넌 너무 고지식해”라고 말하면 아이는 제게 “제가 그렇게 똑똑해 보이나요?”라고 되묻습니다. ‘심심한 사과’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부모는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단 부모님부터 책 좀 읽는 건 어떨까요. 3줄 요약의 시대는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문화는 아닙니다. 앞선 지표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부모 세대부터 책을 안 읽는 걸 확인했으니, 오늘부터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또, 오늘부터 당장 아이 손을 붙잡고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도서 대여 카드’를 발급 받아주세요. 일단 책을 읽으려면 부모나 아이 지갑에 도서 대여 카드가 있어야 책을 빌리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예전 칼럼에서 요즘 자녀 세대의 특징으로 짧고(Short) 빠르고(Speed) 간편한(Simplification) 걸 좋아하는 ‘숏확행’ 문화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롱확행’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 적 있습니다. ‘롱확행’에는 책만 한 게 없다고 봐야죠. 결국 책은 아이에게 문해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SNS에 도둑맞은 집중력까지 찾아주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또, 아이의 문해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글쓰기’ 연습도 시켜주세요. 글쓰기는 단순히 작문 실력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특히 교육학자들은 아이의 언어 활용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딱’이라고 말하죠. 언어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도 “말은 곧 세계관”이라고도 했습니다. 저도 동감하는 문장이죠. 결국 부모는 지금 단문과 비문에 빠진 자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문해력이 답이다”라는 문장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아이들은 꽤 해석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일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얄팍한 언어로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조선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