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맞은 지 어언 1년. 여전히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2021년 학년도가 시작됐다. 다행히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돼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품어본다.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코로나의 흔적이 남을 것이다. 온라인수업도 임시방편이 아닌, 또 하나의 수업 형태로 학교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온라인수업을 통해 쌓은 경험과 배운 점들을 코로나 이후에도 적용한다면 학교는 한 단계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End’ 아닌 ‘And’ 온라인수업은 시공을 초월한다.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를 넘어 지구 건너편에 있는 선생님을 모셔와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같은 학교, 다른 교실을 우리 수업으로 불러올 수도 있다. 온라인수업의 유연성은 교실에서만 수업이 가능했던 공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교실 바깥에서 펼쳐지는 실제 삶을 교실로 쉽게 불러들일 수 있어서 더 유연하게, 더 풍부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온라인수업에서 활용했던 프로그램을 실제 교실 수업에서 활용했을 때의 장점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에 맞춰서 과제를 수행하는 ‘개별화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이
신학기가 시작됐다. 신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느낀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새 반 친구들은 어떨지,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궁금증과 걱정이 공존한다. 친한 친구와 반이 달라져서 우울해하는 아이도 있고 소심해서 신학기마다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다. 설렘과 걱정이 공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일까?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드는 학교라는 곳에 다녀야 하니 낯선 학교가 두렵기도 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산만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기 힘든데 어쩌나?’, ‘낯을 많이 가리고 예민한데 어쩌나?’ 하고 근심할 것이다. 우선 학교에서 아이가 적응하도록 돕는 일이 시급하다. 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학업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요즘 초등 신입생 아이들 대부분이 한글을 모두 뗀 상태로 온다는데, 우리 아이는 받침 있는 글자는 아직 서툰데 어쩌나?’,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영어 수업도 한다는데, 영어를 따로 가르쳐야 하나?’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느라 바쁘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공부에 대한 걱정이
전국의 모든 학교가 방역과 등교수업 확대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뉴스 보고 알았다”라는 교사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수시로 바뀌는 학사 운영에 온갖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산전수전 다 겪어 내성도 생겼지만, 등교수업 확대로 챙기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방역은 기본이고 학습, 생활지도, 관계 형성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학교에 자주 오지 않다 보니 과거보다 교우관계, 사제 간 신뢰가 많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요구와 민원도 늘 것으로 보인다. 학기 초, 학교폭력은 물론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할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각종 비위 보호받을 수 없어 이를 대비하기 위해 최근 교총이 현장에 배포한 ‘2021년 1월 최신 교육 관련 사건·사고 및 판례 안내(교총 홈피 교권·교직 상담란, 교권예방 뉴스 제13호 참조)’는 교직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총 1만7765건의 교권 침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원지위법에 명시된 교육활동 침해 사안은 당연히 보호받고 구제돼야 한다.
[에듀인뉴스]오늘날 세계는 ‘도 우트 데스(Do ut Des)’라는 상호주의 원칙이 여기저기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트럼프가 추구했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결국 강력한 보호무역이란 반시장주의, 반자유화, 폐쇄정책으로 이어지고 자본주의의 근간인 국가 간의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이처럼 상호주의 원칙의 붕괴로 인해 인류가 겪었던 과거 인간의 추악함과 잔인함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그늘이 되어 소환 당한다. 바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일본이 저지를 만행은 상호주의 원칙이 깨어짐으로써 벌어진 인류의 가장 추악하고 잔인한 역사였다. 이는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라는 단순한 믿음의 파괴이며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가 존립할 수 없는 평범한 진리이다. 잠시 역사를 2017년으로 돌려 보자. 세계 곳곳에서는 좌충우돌 문제를 일으킨 ‘마초이즘’ 지도자들이 대거 국제 정치에 등장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러시아의 푸틴, 미국의 트럼프,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 일본 총리 아베, 이집트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 터키 대통령 레데프 타이예프 에르도안,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최근 교육부가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피해 응답률은 0.9%로, 2019년 1차 조사(2019.4.1∼2019.4.30) 대비 0.7%p 감소했고, 학생 천 명당 피해 응답 건수는 지난해와 비교해 모든 유형에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등교수업 일수가 대폭 감소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1차 조사 결과와 비교해 학교폭력 피해‧가해‧목격 응답률은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사이버폭력(3.4%p), 집단따돌림(2.8%p)의 비중이 증가한 점에 주목해 예방교육 방향을 정해야 한다. 시대상 반영된 학폭 양상 첫째, 직접적 물리적 폭력 행위보다 집단따돌림 양상이 고착화, 일상화하고 있다. 지속적 괴롭힘과 따돌림, 익명 앱에서 뒷담화, 혐오 표현을 포함한 언어폭력 및 따돌림, 조롱, 욕설, 째려봄, 그룹으로 때리고 욕함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집단따돌림은 집단으로부터 배제, 조롱과 뒷담화 등을 수반하며, 은밀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증거가 부족하므로 정황만을 가지고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현재일선 학교, 교육청 등에서 교육과정 속에 어울림 프로그램,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
[에듀인뉴스] 세상 곳곳에서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아우성이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삶의 평화를 잃어버린 지가 언제인지 아득하게 다가온다. 영겁(永劫 eternity)의 시간 속에서 보면 불과 찰라 1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듯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에서 2.5단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봉쇄와 격리, 거리두기를 길게 반복하다보니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메마름은 갈수록 팍팍해져 가고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현재의 삶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이 넘쳐난다. 그 중에는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 “세계는 지옥이다”, “삶은 살아가는 데서만 가치가 주어진다.”고 주장했던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부각되기도 하다. 극한의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생각을 유도했던 이 철학자는 모순처럼 들리는 논리로 인간의 생의지가 아닌 순수의지를 고양하여 궁극적으로는 깨달음, 해탈로 이끄는 인식의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을 했다. 왜 다시금 고뇌와 번민에 쌓여 금욕고행을 강조하던 그의 철학을 재고(再考)하게 될까? 현실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어떻게 구하는가?’, ‘행복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인가?’ 등등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
우리 속담 중에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 상대방이 미우면 떡을 아예 안 주거나, 주더라도 하나라도 덜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도대체 왜 이런 앞뒤가 안 맞아 보이는 속담이 아직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까? 그런데 부모가 되면서, 사춘기 자녀가 한창 미운 짓을 하고 속을 썩이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 속담의 참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부모가 되고 속담 참뜻 깨달아 돌이켜 보면, 사춘기 자녀의 행동에 일일이 간섭하고 훈계했던 융통성 없는 부모였기에, 그리고 교육자로서 자녀의 가정교육만큼은 반듯하게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던 엄마였기에, 사사건건 아이와 갈등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미운 짓 하는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아이의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주고 포용했더라면 자식과의 갈등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뒤늦게 후회한 적도 많았다. 사춘기 자녀의 달라진 행동이나 충동적 행동 등을 너그럽게 수용해 주자고 해서 아이의 잘못된 행동까지 무조건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율과 허용의 범위를 넓혀 주되, 아이가 명백하게 잘못했을 때는 강단 있게 야단쳐야 한다. 이때도 아이 자체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
(사진=sbs 캡처)[에듀인뉴스]“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입양 절차에 대한 관리⋅감독과 지원을 강화하라” 이는 최근에 양부모 폭행으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안타까움을 담은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인이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1~2주마다항시 있는 아동 학대 사망 범죄 중 하나이며, 가해자는 주로 친부모라는 점에서 입양 절차를 개선한다고 발생을 줄이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이다. 그 단적인 예로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의하면 1년간 학대로 사망한 어린이는 42명, 이 중 45.2%는 정인이보다 어린 돌 전 아기들이다. 구체적으론 친부모 가정에서 22명이 목숨을 잃었고 모자 가정 6명, 미혼부⋅모가정 5명, 사실혼 3명, 재혼 가정 2명, 부자 가정 1명, 입양 가정 1명, 기타 2명으로 밝혀졌다.(중일일보, 황세희, 2021.1.22.)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교육(아동복지법 제26조 제3항) 및 공공부문 아동학대 예방교육(제26조의2)이 법정 의무교육으로 지정되어 있다. 신고는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
[에듀인뉴스]현재 미래의 인간과 지구에 대한 우려와 염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어쩌면 과학자나 생태학자, 미래학자들에겐 신경과민을 불러일으킬 정도인지 모른다. 여기엔 교육자도 마찬가지다. 2020년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이해 참담하게 다가올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로 출간된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의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최신 연구 자료와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가장 믿을 만한 기후변화의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운동’이나 개인의 윤리적 각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후변화의 막대한 영향력을 규명하고 있다. 더불어 코로나19와 같이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 등으로 총체적 위기를 맞이한 인류 사회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기후재난 대응 매뉴얼이자 미래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지구에는 약 1000만종의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인류라는 한 생물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 결과 지질시대의 이름까지도 새로 등장했을 정도다. 현재 지구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신생대 제4기인 홀로세에 속하지만 최근 200년은 별도로 ‘인류세’라 불러야 한다는
[에듀인뉴스]한때 우리의 가요계를 뒤흔든 노래, 신신애씨의 ‘세상은 요지경’에는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 라는 가사가 있다. 한참 지난 노랫말이지만 지금처럼 조작의 시대,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이처럼 어울리는 말이 없다. 요즘의 가짜뉴스는 SNS 플랫폼의 출현으로 ‘좋아요’와 ‘공유’에 휘둘리는 세상인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일찍이 가짜와 거짓말은 인류 역사에서 늘 존재해왔지만 가짜가 이토록 영향력을 발휘한 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이성이 아닌 감정이기 때문에 생기는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현상이다. 심지어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최근까지도 진짜 뉴스 옆에 가짜뉴스를 나란히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계정 삭제와 같은 조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면 클릭하는 횟수가 같은 비중인 만큼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조심하고 경계할 것인가? 가짜뉴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초절정에 다다랐다. 미국에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작정하고 조직적으로 생산하는 큐아논(QAnon) 같은 조직까지 있다. 그런 여파로 최근엔 미국의 최고 지도자조차 가짜뉴스를 활용하여 정치판을 온갖 가치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