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체험캠프

너네는 이게 예술로 보이니?”… 동시대성 꿰뚫는 ‘나쁜 예술’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나쁜 예술(Bad Art)’로 명명하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화가가 있다. “너네는 이 쓰레기를 진심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니?” 쿠바 하바나 출신 씨비 호요(CB Hoyo‧27)는 인스타그램(@cbhoyo)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바이럴되며 개성 강하면서 개념적 성격을 띠는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 중 하나다. 화가라면 응당 그림으로서 말하는 법이지만, 그는 글(텍스트)을 소재로 삼은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간지럽지만 우리 스스로는 긁을 수 없는 지점을 속 시원히 대신 긁어주는 위트 넘치는 촌철살인의 텍스트로 단박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구절을 삐뚤빼뚤한 필체로 옮긴 그의 그림은 출품되는 족족 판매되고, 그중에서도 인기 작품은 판화라도 수백만원은 우습게 호가한다.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그의 대표적인 텍스트 아트 시리즈 ‘Corny Quotes’를 보면, 자신을 ‘국제적인 포르노스타(international porn star)’이자 ‘난독증이 있는 시인(dyslexic poet)’이라고 소개하는 괴짜인 게 전혀 놀랍지 않다. 현재 벨기에에 작업실을 두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작가는 2022년에는 더욱더 바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난독증이 있는 시인’은 그렇다 치고, 대체 ‘국제적인 포르노 스타’는 또 무슨 말인가.
 

“조크(joke)다. 웃기면서 아무 상관 없는 엉뚱한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뚱딴지같이 포르노 배우가 되기로 했다. 내가 진짜 포르노 스타일까? 그걸 알아내는 건 보는 이들의 몫이다.”
 

 
─현재까지 본명이 베일에 싸여있다. 많은 이들이 본명을 궁금해한다. 예명 ‘CB Hoyo’는 무슨 뜻으로 지었나.
 

“CB는 나의 진짜 이름의 이니셜이고 Hoyo는 나의 성(姓) 중에 하나다. 한마디로 내 본명의 짧은 버전이랄까. 괴상한 뜻을 지닌 이름이 전혀 아니다. 그저 나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인 이름을 원해 짓게 됐다. 앞으로도 내 본명을 알려주고 싶진 않다. 계속 베일에 싸여있길 바란다.”
 

 
─오늘날의 단면을 꼬집고 현대인의 속마음을 날카롭게 내다보는 텍스트 아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와 동시대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뉴스, 또 나의 일상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을 화면에 담아낸다.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게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지 작품에 드러내고 싶다. 대부분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개인적인 경험, 또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생각, 감정 등을 소재로 삼지만, 소재로 해 작업이 이뤄진다. 이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생각만 많이 하지 입 밖으론 내지 않는 것들이다. 다른 이들로부터 비판받고 평가되길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차마 직접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내가 대신 말하고자 하는 게 내 작업의 주요한 목적인 셈이다. 
 

그야말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 내 모든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데, 텍스트가 내 작업의 중심인 만큼, 아이디어나 영감이 생겼을 땐 그 글을 먼저 핸드폰에 쓰고 본다. 그리고 이를 잘 ‘저장’해놓았다가 캔버스에 옮기는 식이다. 종이나 손에 잡히는 어떤 것에라도 끄적거리긴 하지만 95%는 핸드폰에다가 쓰는 것 같다.”
 

 
─이를테면, ‘Overthinking Will Fucking Kill You’(2020)와 같이 수많은 ‘좋아요’와 공감을 얻는 텍스트 아트가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사람들이 그토록 이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어떤 누구라도 이 ‘Overthinking Will Fucking Kill You(과도한 생각이 당신을 해칠 것이다)’ 문구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것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것(overthinking)은 인간의 습성이다. 그래야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이러한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행동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문제들을 새롭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결국 우리 인간의 일부분이고 얼마나 더 많이 자주 하냐는 차이지, 누구나 지나치게 오래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에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작업을 두고 스스로 ‘Bad Art’라고 부르곤 하지 않나. 실제로 어떤 이들은 ‘Corny Quotes’ 시리즈를 향해 ‘저게 예술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본 댓글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종이랑 펜만 있으면 나도 하겠다’라고 하더라. 그들을 직접 마주한다면 뭐라고 말할 텐가.
 

“예술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다. 보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오 물론, 너도 그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 네 손해야.’”
 

 
─지금의 텍스트 아트 작업을 시작하기 전,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등의 명작을 그대로 따라 그린 시리즈 ‘Fakes’가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작업을 다시 선보여주길 바라는 팬들이 많은데.
 

“‘Fakes(위작)’ 연작을 통해 텍스트의 힘과 동시에, 내 생각을 텍스트로써 표현하는 것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위작’은 앤디 워홀의 작업을 재해석한 거였는데, 처음엔 어떠한 추가적 요소가 없었다. 그 상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한번 그 위에 텍스트를 얹어봤다. 미술계에서 자행되는 위조에 관한 기사를 읽고 떠오른, 굉장히 간단하고도 직접적인 문구였다. 그러나 그 단순함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결과물은 엄청나게 놀라웠다. 그 후, 나는 장 미쉘 바스키아, 마크 로스코, 파블로 피카소, 키스 해링 등의 작품을 재작업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거듭하며 작품 그 자체와 텍스트 간의 상관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더욱 집중했다. ‘위작’ 연작은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 올해에도 진품 같기도 위작 같기도 한 작업을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쾨닉갤러리의 인하우스 아트페어 ‘MISA’에서 생애 첫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1만개의 에디션 작품을 공짜로 나눠주고 작품 보증서를 발급해주는 퍼포먼스였다. 또 이 에디션들을 분쇄해 쌓아놓은 설치 작업도 실시간으로 함께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무엇을 기대했나.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객이 이를 분쇄할 수도, 혹은 원하는 만큼 마음껏 집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반응하고 혹은 예술을 소중히 여겨보며, 예술과 비예술에 관해 생각해보게 하고 질문을 던져보게끔 하고 싶었다. 나 또한 그들의 행동과 반응을 통해 다음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이를테면, ‘예술품인 걸 알면서, 혹은 예술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 예술품을 파괴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누가 예술품의 가치를 정하는지’, ‘이들 관객이 미술계의 미래를 정하는 데 있어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 등의 질문이 떠올랐다.”
 

 
─최근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
 

“NFT가 내 작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NFT를 통해 내 작업을 더욱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전에는 미디어 작품을 판매하는 게 사실 쉽진 않았다. 애니메이션 등과 같이 직접 만질 수 없는 작업은 아티스트에게 있어 언제나 어려운 것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 사진 등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작업과 함께 설치 작품도 준비 중이다. 사각형 캔버스를 벗어난 네모 박스 밖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
 

 
미술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무엇이 작가의 길로 이끌었나.
 

“엄마 말로는 내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기억할 수 있는 순간부터 예술은 언제나 내 삶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뛰어들었다. 물론 그전에도 그림을 그렸지만, 취미 활동 혹은 내 일상을 잊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용이었다. 식당 운영을 전공한 나는 전업 작가가 되기 전, 4년간 요식업에 종사했다. 당시 나는 식당에서 장시간 고된 근무로 너무도 지친 상태였다. 미술이야말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하루아침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그만두고 작가로 전향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계획도, 돈도, 같이 일할 갤러리도 없었지만, 단숨에 결심한 거였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 영향을 받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오늘날의 세상과 현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나의 작업에 있어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다. 사회의 정의와 부조리, 그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를 바라보는 게 아주 재밌다. 그래서 나는 영향을 받는, 좋아하는 작가는 따로 없다. 그냥 때때로 좋아하는 작품이 있을 뿐이다.”
 

─올해 예정된 전시나 계획은. 
 

“2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갤러리 ‘플랜 엑스(Plan X)’에서 NFT 아트 그룹전 ‘FOMO(Fear of Missing Out)’에 참여한다. 세계적인 규모의 NFT 마켓인 Nifty Gateway(@niftygateway)와 함께하는 전시로,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개최된다. 이외에도 올해 많은 계획이 실행될 예정이다. 그게 무엇일지는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다.”
 

  • CP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