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는 미술로써 시대상을 작품에 옮긴다. 최진욱(66)은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작금의 사회 속 현장에서 채집한 찰나를 화면에 담아왔다. 직접 눈앞의 대상을 직시하며 이를 그려내는 것이 가장 흥분되고 이야말로 자신의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아와 오늘날의 풍경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려왔다.
젊은 세대의 불안정한 현실과 미래를 자조적으로 칭하는 이른바 ‘88만원 세대’ 혹은 KTX 승무원의 삭발식 장면을 소재로 삼거나, 30년 전 촬영된 자신의 가족사진을 그대로 캔버스에 그려내는 등 작가적 시선으로 마주한 동시대를 대범하고도 강렬한 색감으로 재현한다.
작가가 지난 27년간 재직했던 추계예술대 교수직을 그만두며 이에 대한 소회를 담은 회화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 내걸렸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그의 근작에는 제자들과의 시간, 작업실 풍경 등 사소한 생활 풍경이 담겼다.
“자주 보는 눈앞의 사물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인물일 때는 작가에게 굉장히 그리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죠. 모델 서달라고 해도 학생들이 웬만하면 절대 해주지 않는데, ‘학교를 떠나며’라는 주제라고 설명하니 흔쾌히 도와줬어요. 대부분 검은색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몇몇이 밝은 옷을 입고 있어 모델로 이들을 모델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학교를 떠나며’ 시리즈에는 화실 풍경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특히 ‘374 학교를 떠나며 3’에서 작가 스스로 자신을 화면 중심에 두고 좌우로는 학생을 배치했다. 요란한 기교 없이 자신의 감정을 투박하게 드러내며 은퇴라는 삶의 변화 앞에 누구나 마주할 법한 공허와 혼란을 숨김없이 묘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작업실의 벽을 연달아 그린 회화들도 눈에 띈다. 달력과 전기 콘센트 따위가 실제 벽이란 사실을 상기시킨다. 세세한 선은 보이지 않으나 과감한 붓터치에 원색의 대비가 더해지며 사물 본연의 특징을 극대화하고 현장감을 또렷하게 전달하는 듯하다. 이에 작가는 “나에게 색감이란 말 그대로 색의 느낌이다. 내가 쓰는 색들은 관찰 끝에 순간적으로 보이는 색을 포착해 표현한다. 평범한 하얀 벽지이지만 찰나의 내 눈엔 붉은색과 녹색으로 보였다”라고 했다.
이혜미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는 “일상적 사물을 고유의 색감을 통해 탁월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전시를 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4월 23일까지 이어진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