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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두 번째 봄을 맞이하며… ‘박래현, 사색세계’展 2부 개막

 
 
 
“봄이 오면 한 번씩은 생각할 기회를 가져 버린다. 우리는 아무런 예언도 없는 미지의 공간을 더듬고 있는 것이다. 봄이라는 뽀얀 계절은 때때로 나를 이런 부질없는 사색세계에 몰아 버린다.”(박래현, 1959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박래현(1920~1976)이 고대했던 그 봄이 다시 왔다. 동양화라는 한계, 여성이라는 굴레를 뛰어넘고자, 예술로써 당시 여성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재료와 기법의 고정관념에 매몰되길 거부한 모험가이자 도전자였던 박래현의 작업 생애를 시기별로 세심히 짚어 보는 전시 ‘박래현, 사색세계(Park Rehyun – Rumination)’의 2부 ‘피어나다(In Bloom)’가 8일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업 생애를 기준으로 1, 2부로 나눠 열리며, 지난달 26일까지 진행된 1부 ‘생동하다(Vibrant with Life)’에서는 작업 초창기에 속하는 채색화와 드로잉 등을 위주로 살펴본 바 있다. 이어서 이번 2부에서는 박래현이 작업 후기에 몰두했던 판화를 비롯해 태피스트리, 콜라주 등 작가의 실험적 면모를 볼 수 있는 대표작이 내걸렸다. 박래현 말년의 판화 작업은 그의 작업 중에서도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동양화를 모색하며 의지적 행보를 보여왔던 작가의 생전 도전적 의식을 가장 잘 드러낸다.
 
 
 
그는 1969년 뉴욕 프랫 그래픽 아트센터(Pratt Graphic Art Center)로 유학길에 올라 본격적으로 판화 작업에 매진하게 되는데, 특히 유학 중인 1973년 하와이예술아카데미가 주최한 ‘국제판화전’에 참가, 이때 출품한 판화 ‘기원’이 기관에 영구 소장되는 성과를 이루기도 한다. 미국에 1974년까지 머물며 판화를 공부하고 작업을 펼쳐왔으니 5년에 이르는 짧지 않은 시간을 판화 연구에 쏟았다. 애초에 판화를 배운 계기가 판화 기술을 동양화에 접목하기 위함이었으므로, 장지에 그린 그림을 판화지에 배접하는 등 서로 다른 두 매체의 접점을 찾으려 한 노력의 흔적을 작품 다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판화에 매료된 구체적인 이유는 전해지지 않지만, 현대 판화를 전위적인 매체로 바라보던 당대 화단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영향으로 추측된다. 판화 이전에 박래현은 인물화 등의 구상작업에서 추상화로 전향하는데, 이러한 변모는 1960년 전후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렇듯 새로움을 갈구하던 작가였기에 판화에까지 안착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1974년 귀국한 작가는 신세계미술관에서 ‘박래현 판화전’을 열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뉴욕에서 제작한 판화와 태피스트리 등 60여 점을 전시했다. 이어서 같은 해 말, ‘제4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에 참가하는 등 판화 작업을 내보이는 데 큰 열정을 보인다. 귀국 후 선보였던 작업들은 미국에서 배워온 판화를 동양화와 접목한 것으로서 박래현의 야심 찬 신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는 1974년 3월 9일자 조선일보에 작가가 기고한 에세이 ‘나의 신작, 기원 ‘혼돈의 시작’ 표현시도’에서도 드러난다. “붓으로 그리는 맑은 여백의 동양화를 하다가 뉴욕에서 판화와 만났다. 평소 화선지의 한계에서 벗어나 보려던 나에겐 깊고 절실하게 구체적으로 손에 잡혀 표현되는 여러 가지의 판화기술이 매혹적이었다. 예술이라는 말과 곧잘 상반되는 단어로 쓰이는 기술이라는 것이 작가의 예술성을 깊게 해줄뿐더러 표현방법에 의외의 확대를 가져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75년 7월 ‘(판화로써)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라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이때 간암이 발병했음을 알게 됐고 병고가 악화돼 그해 11월 한국으로 돌아와 투병 중 이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뉴욕에서 6년간 판화를 배운 그 분위기와 과정이 앞으로의 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줄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라며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열의와 설렘을 보였던 작가는 결국 이를 채 펼쳐 내보이지 못하고 5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판화 대부분은 1970년대 제작된 것들로, 작가가 한창 판화 제작에 매진할 시기에 이를 어떻게 전개하고 개발하고자 했는지 볼 수 있다. 아울러, 앞서 1부에서 공개됐던 작가의 작업 초기 대표작을 연장 전시한다. ‘박래현표’ 여성 인물화의 시작을 알리는 조선미술전람회 총독상 수상작 ‘단장’(1943), 피카소의 큐비즘을 연상하는 화풍의 대한미협 대통령상 수상작 ‘이른 아침’(1956) 등을 다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다. 
 
 
 
 
한편, 이번 전시 타이틀 ‘사색세계’는 박래현이 1959년 4월 조선일보에 기고한 에세이 ‘봄이면 생각나는 일, 삶과 마주 섰던 계절’ 말미의 한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다. 에세이에서 그는 지난 몇 년간의 봄을 상기하며 식민국가의 운명 속에서 마음의 어두운 흔적과 불안한 감정을 더듬어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의 봄은 아름다웠다고 술회했다. 이번 전시는 해당 에세이에서 모티프를 얻어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갤러리에서 최초 개최되는 작가의 개인전으로, 1, 2부 도합 80점이 훌쩍 넘는 작품을 선보이는 대대적인 회고전이다. 박래현의 화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솔로쇼’가 귀한 상황에서 이번 전시가 더욱더 반가운 이유다. 물론 이에 앞서 작가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TV CHOSUN 개국 10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전: 더 오리지널’(2021)에서 김환기, 이우환, 김창열, 유영국과 함께 박래현의 미공개 작품이 공개됐고, 세계 탑 메가 갤러리 페이스(Pace)는 ‘2021 키아프(Kiaf)’에 박래현의 회화를 들고나와 부스를 꾸리기도 했다.
 
 
작업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시도를 갈구했던 박래현은 동양화의 근원적인 정체성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에 맞게끔 발전시키고 변혁시키고자 했다. 국제 미술계에서 동양화가 어떻게 호흡하고 뿌리를 뻗어 나갈지, 동양화의 현대화를 어떻게 실현할지 그 실마리를 동시대 미술 속에서 찾고자 한 박래현의 감격적인 분투를 이번 전시에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화~토 10:00~18:00 운영. 관람료 무료. (02)736-7833
 
 
 
  •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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