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연의 목소리가 가슴을 관통할 때 비로소 셔터를 누른다”

[사진작가 이정진]
대자연과 교감 통한 명상적 사진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 결합한 대작 첫선
PKM갤러리 개인전 ‘VOICE’, 3월 5일까지
 
“삼각대도 필요 없어요. 자연은 도망가지 않거든요. 느낌이 오는 순간 직관적으로 신속하게 셔터를 누를 뿐이에요. 그리고는 인화하기 전까지 촬영한 사진은 보지도 않죠. 그저 현장에서 자연과의 조우, 그리고 공명 상태에서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이정진(58)은 한지 아날로그 작업 방식으로 사진예술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한지에 붓으로 감광유제를 바르고 그 위에 직접 인화하는 수공예적 방식을 통해 고유의 질감과 물성을 살리고 재료와 매체의 실험을 지속하며 독특한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아날로그 수제 프린트 방식을 고집해오다 최근에는 디지털 방식으로 접목해 표현 기법을 확장했다. 이는 찍힌 대상을 읽게 하기보단 보이는 이미지와 프린트 질감의 조화를 주며 보는 이가 온몸으로 작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생명이 육신을 잊고 존재하듯이, 사진 또한 질감, 흑백, 농담이 어우러져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된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프린트하는 데 공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는 아날로그로 한지에 작업하는 것에 대한 물리적인 고충과 한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원하는 대로 컨트롤이 어려울뿐더러 한 장을 완성하는 데만도 너무나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야 했어요. 촬영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은데, 한두 달 촬영했다고 하면 인화에는 일 년을 쓰는 식이었죠. 게다가 똑같이 작업해도 에디션마다 퀄리티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도 핸디캡이었고요.” 디지털 방식을 결합하면서 대신 컴퓨터에서 원하는 톤을 조정하는 데 집중한다. 일단 한 번 완성하면 동일한 퀄리티의 똑같은 에디션을 만들 수 있고 사진 크기에서도 자유로워 현재 프린트 방식에 흡족하단다.
 

 
<Vioce>는 이러한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결합해 처음 시도한 대작이다.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며 광활한 대자연이 원초적 모습을 드러내는 묵시적 순간을 담았다. 그는 단순히 풍광을 있는 그대로 찍어내는 사진작가가 아니다. 대상이 표면 너머 그 자체의 영혼을 현시할 때까지, 응시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그의 사진은 명상적이고 회화적이며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영원성을 담는다.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시간을 가지며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이 반영된 풍경이 순간 그의 가슴을 관통할 때 비로소 셔터를 누른다. 작품 타이틀에 드러나듯이 자연에 투영된 작가 내면의 목소리이자 자연이 작가에게 던지는 메아리가 화면에 울리는 듯하다. 
 




 
또 다른 신작 <Opening>은 인적 드문 자연 속에서 마주한 풍광을 세로형 화면에 담은 연작이다. 일반적인 파노라마 풍경 사진과 달리, 위아래로 긴 이 한지 작업은 한국의 족자와 닮았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제한된 인식의 테두리를 넘어 무념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Opening’이란 제목과 함께 좁은 세로 프레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광활한 사막의 파노라마 뷰를 상상할 때 이정진의 세로 사진은 시각적으로 갇혀 있지 않으며, 자연의 일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통찰하게 하는 열림이 있다.
 
이정진 개인전 ‘VOICE’가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순회 회고전 ‘에코-바람으로부터’(2018) 이후 2년 만에 마련된 개인전으로, 작가 내면의 숨을 대자연 풍경을 통해 사진에 담아낸 시리즈 <Opening>(2015~2016)과 국내외에서 최초 공개되는 최신 연작 <Voice>(2018~2019)까지 총 25점이 내걸렸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작가와의 대화가 2월 1일 오후 2시부터 갤러리 별관에서 열리며, 작품집 ‘Opening’이 한정 판매된다.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호주 국립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 등에 소장돼 있다. “사진은 읽는 것이 아닌, 원초적으로 느끼는 것이에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이걸 찍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자신만의 감성과 감정으로 자유롭게 감상하세요.” 3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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