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원 소장./유튜브 '교육대기자TV' 채널 캡쳐
‘대치동’
사교육하면 흔히 떠오르는 단어다. 많은 부모는 자녀의 입시를 위해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치동에 관한 성공 신화 보다는 그것에 가려진 이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가 있다. 바로 부모교육전문가 박재원 사람과교육연구소장이다. 대치동에서 입시 컨설턴트로 일했던 그는 최근 교육대기자TV와 인터뷰에서 올바른 사교육 활용법, 나아가 중위권을 위한 메시지를 설명했다.
Q.많은 학부모를 상담한 것으로 유명하다.
A.여러 상담을 하면서 학부모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 부모는 공교육에 대한 기대치가 크지 않아 자녀가 받아야 하는 모든 교육 과정의 계획을 대신 세운다. 때문에 ‘진도를 어떻게 정해야할까’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선행학습이 중요할까’ 등 여러 문제로 고민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녀의 입시를 위한 노력인 만큼 부모의 역할이 막중하고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체감했다.
개인적으로 공교육과 방과 후 학교 외 또 다른 학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엄마라는 이름의 학교다. 부모는 아이들의 학교생활뿐 아니라 학교 밖 가정생활에 있어서 시간표를 직접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학교 수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Q.공교육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가 계속 낮아지는 것 같다.
A. 그렇다. 사태가 심각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의외로 우리나라의 교육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대치동이다. 학원의 역사는 그룹 과외가 체계화되면서 전문 학원으로 발전한 것에서 비롯된다. 다만 압구정·청담동·신사동 등은 다른 상권으로 채워져 있다 보니 학원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당시 대안으로 대치동에 학원들이 들어섰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우리나라 사교육 1번지가 된 것이다.
공교육에는 기본적인 질서가 존재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이라는 질서, 학교 안에서는 학년이라는 질서. 그러나 사교육으로 인한 선행학습으로 이러한 체계가 무너졌다. 얼마만큼의 금액을 지불하느냐에 따라 학년에서의 격차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집중하는 문화가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소위 무한 경쟁이 시작됐고 그것이 대치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진도에 맞춰 천천히 학습하려고 해도 사교육으로 추월해오는 경쟁자가 많다보니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자녀가 뒤쳐졌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함을 느끼는 부모가 많다.
Q.주변 학부모를 볼 때 이러한 불안감이 심한 경우가 많다. 사교육을 시켜도 안심하지 않는 모습이다.
A.그래서 우리나라 사교육의 용도는 부모의 불안감을 달래는 신경안정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가 약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대치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곳에서 공부해 입시에 성공한 학생은 많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못지않게 많은 실패사례를 함께 지켜봤다. 이러한 경험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성공 사례의 분포와 개인이 성공확률은 다르다는 것이다. 강남에 부자가 많다고 해도 이는 지역적 특성과 부자가 많이 거주하는 확률일 뿐이지, 부자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아니다.
입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학군과 부모의 노력이 있어도 내 아이의 수준과 실력 등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노력이 부족하면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주도성을 길러야 한다. 엄마의 의지로만 아이를 끌고 가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핵심은 아이의 주도성과 부모의 노력을 더해 상호 존중하는 자세를 만드는 것이다.
Q.사교육을 열심히 활용한 아이가 성적을 잘 받는 것은 현실 아닌가.
A.사교육 무한경쟁에 대부분 부모가 뛰어드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수업 진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학원 진도에 맞춰 아이를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초반에는 부모 주도하에 공부한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는다. 왜냐하면 학습량과 진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을 통해 중학생이 고3 수준의 학력을 갖추기도 한다. 문제는 학교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중간·기말고사 문제를 낼 때 변별을 갖추고자 중학생 수준 이상의 문제를 내게 되는 것이다. 중학생 문제지만 해당 학년의 학생이 풀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되는 셈이다. 이는 사교육 차이에 따라 아이의 수준이 차이가 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학생도 제 속도대로 느리지만 천천히 가면 수능에서 선행학습을 많이 한 학생과 같은 선상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다.
- 박재원 소장./유튜브 '교육대기자TV' 채널 캡쳐
Q.그러나 사교육에 의지해도 성적이 안 나오는 중위권 아이가 많다.
A.목표를 가지고 학습하는 아이와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의 성적은 다르다. 공부할 이유를 전혀 못 느끼면 노력을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지만 동기나 진로 등에 대한 확고한 계획이 있으면 학업 성취도가 오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수학을 풀 때 단순히 문제를 많이 접해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그 원리를 깨우치고 흥미를 느끼는 경험을 얻어야 한다. 만약 아이가 해당 과목을 어려워해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가 재밌게 학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문제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다. 당연히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무조건 학원부터 보내는 태도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진찰 없이 처방을 내리는 의사가 없듯이 아이의 수준과 상황을 우선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Q.아이의 성적이 안 오를 때 대부분 부모는 자녀를 탓한다.
A.정말 잘못된 행위다. 성적을 잘 받는 상위권 학생은 소수이며 대부분은 중위권에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는 중위권 자녀가 상위권인 아이와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을 원한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금방 성적이 오릴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이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소수의 성공 사례에 현혹되지 말고 내 아이에게 맞는 공부원리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즉 상위권으로 올라가기 위한 공부를 시키기보다 아이가 공부의 재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를 돕기위해 중위권 아이들이 100미터 달리기에서 꼴지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격차가 벌어질수록 선두에 달리고 있는 아이와 제대로 된 경쟁이 어렵다. 속도는 못 따라가도 좋다. 단, 한 바퀴를 추가로 도는 등 끝까지 가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Q.중위권 아이는 상위권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을 것 같다.
A.‘해도 잘 안 돼.’ 중위권 아이가 가지는 생각이다. 결과가 안 좋기 때문에 부모에게도 미안하고 공부를 더 멀리하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부모가 사교육을 시킬 때 상위권을 목표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부모가 먼저 나서서 우리 아이와 상위권 아이가 가는 길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무작정 상위권을 목표하면 아이가 중간에서 낙오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공부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낄 우려가 있다. 공부 속도가 느린 아이는 느린 속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게 상위권이 되는 지름길이다.
Q.그러나 초·중·고 공부의 종착역이 수능인 점을 생각하면, 시간이 적지 않은가.
A.시간이란 개념을 달리 가졌으면 좋겠다. 부모의 시간은 진도에 맞추는 것이 아닌, 내 아이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에 있다. 거듭 말하지만 중위권 학생의 부모는 주변 상위권 아이와 비교하는 유혹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좋은 성적만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공부가 의미 있는 교육으로써 훗날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