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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엄마 몰카’에서 이제는 ‘민식이법 놀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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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병충해를 예방한다고 동네마다 소독차가 허연 연기를 내뿜곤 했었습니다. 당시 소독차를 가리켜 저나 친구들은 ‘방구차’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소독차가 내뿜는 소리가 ‘부와앙’ 굉음을 낸다고 해서 ‘방구차’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집에 있다가도 ‘방구차’ 소리만 들리면 신발을 거꾸로 신고라도 달려나가 동네 아이들과 떼를 지어 쫓아다녔습니다. 메케한 냄새에 앞도 보이지 않는데 뭐가 그리도 좋았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실소(失笑)만 나옵니다.

아쉽게도 추억 속 ‘방구차’는 이제 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방구차’는 소리도 연기도 없는 소독차로 대체되었죠. ‘방구차’가 사라진 이유를 알아보니 환경오염과 소독 효용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도로 환경을 생각하면 ‘방구차’가 사라진 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사라진 ‘방구차’를 연상시키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아찔한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한 아이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차량을 신나게 쫓아오다 부딪칠 뻔한 아찔한 장면이었습니다. 뒤이어 쫓던 차량을 놓치자 다시 다른 차량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까지 찍혀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민식이법 놀이’입니다.

이후 ‘민식이법 놀이’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에 한 유명 지식검색 사이트에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황당한 질문을 올리기도 했죠. 아이는 “제가 용돈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요즘 동영상을 보니까 차를 따라가서 만지면 돈을 준다고 하는 데 한 번 만지면 얼마 정도 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올려 네티즌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민식이법 놀이’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확산을 보이며 용돈을 마련하기 위한 ‘짭짤한 놀이’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민식이법 놀이’는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합의금을 편취하는 어른들의 사기범죄와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기죄 적용을 떠나 아이들의 ‘안전’입니다. 저러다 실제 교통사고로 이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많은 운전자가 ‘민식이법 놀이’ 때문에 도망치느라 혼쭐이 났다며 하소연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민식이법’의 숭고한 취지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몇몇 초등학교 선생님을 통해 아이들이 ‘민식이법 놀이’를 아는지 확인했더니 대부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민식이법 놀이’를 안다고 답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가출 경험이 있는 한 중학생으로부터 “생계 비용을 위해 ‘민식이법 놀이’가 거론되기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행히 친구들끼리 이야기는 오고 갔지만 다칠까 무서워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되면 ‘민식이법 놀이’가 앞으로 가출이나 비행소년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경제적으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 쉽고 확실한 ‘돈벌이’로 여겨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민식이법 놀이’는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뾰루지가 아닙니다. 잊고 있었지만 우리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아이들의 아찔한 놀이를 여러 차례 관전했었지요. 초등학생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일명 ‘용인 벽돌 사건’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후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일명 ‘벨튀’와 부모의 음주와 흡연을 따라 하는 ‘부모 놀이’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엄마를 대상으로 자극적인 영상을 몰래 찍어 올리는 일명 ‘엄마 몰카’까지 등장해 맘카페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난리가 났었습니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화장 놀이’는 10년이 넘게 부모의 고민세트로 남아 있습니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때문에 아이들의 행동모형이 이미 딱딱하게 굳은 상황에서 말랑말랑한 부모의 잔소리가 교육이 될지 의심스럽고, 또 학교에서도 스마트폰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보니 방과 후 아이들 놀이에 대한 대비가 쉽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때문에 훈육과 교육의 방향이 모두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도 걱정이지만 학교 선생님은 더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경찰 제복과 법으로 행동을 다스리는 것도 교육적으로 망설여지는 부분이지요.

사회적 장치를 기다리기에는 아이들의 행동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일단, 학교는 아이들의 아찔한 놀이문화를 ‘학생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설계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또 부모는 ‘밥상머리 교육’을 소환해주세요. 교육과 훈육의 핵심은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고, 나아가 아이를 둘러싼 불안전한 사회 장치들을 두루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부모의 객관적이고 교육적인 관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민식이법’의 취지와 내용을 정확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당연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은 어른들의 안전의무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행해야 할 횡단보도 법규 준수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사안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게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애쉬 효과’와 ‘양 떼 효과’처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을 따라 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민식이법 놀이’가 용돈이 목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배경에는 또래집단에서 튕겨 나오지 않으려는 ‘레고 심리’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아이들 세계에서 압박을 벗어나게 하는 안전책은 아이의 비어있는 의식 속에 ‘안전선’이라는 그림을 그려주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에게 또래가 아무리 좋아도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단단하게 심어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사람을 위한 안전의식’입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안전에 무감각합니다. 성장기 구간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전의식은 학업성취와 범죄예방 못지않게 요즘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중에서도 안전의 본질은 ‘사람’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안전의식을 갖는다는 건 아이 스스로 ‘안전한 자아’를 구축하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늘 숨어서 따라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매체’입니다. 학계나 전문가 집단에서도 소셜미디어가 아이에게 중요한 매체가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래서 콘텐츠의 선정성과 광고에 대한 논쟁은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과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사유를 해보면, 아이들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는 매체 중의 매체는 바로 ‘부모의 말과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은 24시간 켜져 있는 텔레비전이나 소셜미디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부탁드리건대 “부모도 자식에게는 공인이다”라는 명제를 한번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부모는 ‘개인의 의견도 존재하지만 자식을 위해 공적인 의견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 글을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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