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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팡 고등뉴스] “민족사관고등학교” 이런 학교를 버려도 좋은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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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될 수 없는 자사고 폐지의 발상


정부는 2019년 11월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를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5년 3월에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발표하고, 이런 내용 을 골자로 하는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의하면,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는 초기의 자립형사립학교로 지정된 학교의 하나이지만, 자사고에 속하는 학교의 ‘일괄 일반고 전환’의 대상으로서 설립 29년이 되는 해에 본래의 건학이념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학교를 폐쇄하든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민사고는 2007년에 미국의 Wall Street Journal이 선정한 미국 명문대학 진학 우수학교의 세계순위 32위(미국학교 제외 1위)로 평가받은 바 있고, 2012년에는 세계명문고교의 조직인 G-20 High Schools에 회원학교로 가입된 세계적 수준의 명문고등학교로 평가받은 학교이다. 현재의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래, 이 학교를 포함하여 자사고는 특목고(외고), 국제고와 더불어 자체의 존폐문제를 두고 정부를 상대로 저항과 마찰을 빚어 오고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위헌(違憲)에 해당된다는 법률적 판단과 같은 수준의 이변이 없는 한, 적어도 이 정권이 지속하는 동안은 그 방침이 철회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는 바, 즉 이해할 수 없는 점의 하나는 이것이다. 분명히 지금의 자사고나 특목고는 법률에 의하여 국가의 공식적인 인가를 받아 설립된 합법적 교육기관이며, 비교육적 범죄에 연루된 학교도 아니고, 더욱이 이 정부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보할 정도로 특정한 정치적 노선의 물리적 강제에 대하여 무력한 상태에 놓인 것도 아니라면, 왜 한시적 정권이 “백년대계”라고까지 일컫는 교육의 제도적 틀을 일시에 바꾸어 놓고자 하는가?


내가 보기로 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비록 현 집권 정당이 계속 유지되는 경우라도, 자사고, 특목고, 국제고는 후속되는 정권에 의해서 되살아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정도로 제도적 정당성을 가진 학교들이다. 최초의 자사고는 김대중 민주당 정권에서 출범한 것이고, 이런 학교의 존속여부는 자체의 생존역량에 달린 것이다. 이러한 학교들은 사학의 설립요건인 건학이념을 근거로 하여 정당하게 인가받은 학교이므로, 일종의 행정명령 형태로 강제폐쇄하거나 다른 형태의 학교로 전환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이러한 학교들의 폐쇄를 추진하려면, 행정적 힘에 의존해야 하기보다는 위헌적 소송을 제기하거나, 아니면 헌법과 교육법의 개정을 추진하여 설립의 근거를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 세계의 일부 국가들 중에는 사립 중등학교의 제도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립학교의 제도가 법률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건학이념에 따라서 정부의 인가를 받아 학교를 세울 수 있으며,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자녀를 거기에 보내어 교육받도록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나라에서 정부가 특정한 사립학교를 정책적으로 폐쇄하거나 전환토록 하는 조치는 교육제도 운영의 자체모순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 어차피 건학이념은 무시되고 법적 인가의 내용도 달라지므로 폐쇄와 전환은 의미상 차이가 없다.)


물론 정부는 무조건 완력으로 자사고 등을 폐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교육부는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가 사교육을 심화하고 부모 소득에 따라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며 "입시 공정성을 확보하고 미래 고교교육을 준비하고자 일반고 전환을 결정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를 폐쇄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문제라면, 심하게 말해서, 학교제도를 없애면 가장 쉽게 해결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국민교육의 감독관청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최근에 와서 관청의 이름을 “지원청”이라고 하듯이, 사립을 포함한 산하의 학교들을 감독하고, 지원하고, 보호하고, 조정하고, 문제해결을 위하여 협력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어느 정권에 의한 것이든지 간에 자사고가 폐쇄조치를 수용해야 할 수준에 있다면 그 책임의 소재는 개별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지도 혹은 지원을 담당한 국가적 부서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정권의 국가와 현 정권의 국가는 다른 국가가 아니다. 정권교체는 국가적 정체가 교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적어도 정치적 중립을 전제로 하는 교육의 제도와 정책의 일관성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유지되어야만 한다.


현재의 자사고, 특목고(외고), 국제고 등이 무허가 교육시설도 아니고 불법 단체나 조직도 아니다. 제도적인 설립요건에 따라서 인가된 학교들이다. 이 학교들에서 실시된 교육이 공식적으로 학력을 인정받고 진학과 취업에 요구되는 요건을 갖추었느냐는 국가가 정한 법률적 기준에 따르는 판정의 문제이다. 이것이 사립학교이고 법률로서 보장된 제도이다. 엄연히 국민교육의 일부를 맡아 있는 사립학교, 분명히 거기서 이루어지는 성장세대의 국민교육으로서 문제가 있다면, 정부와 교육자치기관이 감독하고 지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와 정부는 이러한 학교를 폐쇄하거나 일반고로 강제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 해결을 위하여 해당학교와 협의하고 필요한 조정과 가능한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교육부가 먼저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전직 교육장관이 고등학교 교장 한다고?"


나는, 정책개발의 관념적 논리로써보다는 실제로 현장의 경험에 의한 실천적 가능성과 그 성과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사립학교, 특히 자립(율)형 학교를 허용하고 진흥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자 이 칼럼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여기에 계속될 칼럼에서, 나는 개별학교인 민사고의 경우를 중심으로 하나의 자사고가 만들어진 경위와 그 학교의 독특성, 그리고 일반 공립학교에 기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교육적 요구, 특히 이런 학교가 자녀 교육적 수요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는가를 검토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한 학교의 사례로써 자사고 등의 특수목적의 사립학교가 왜 있어야 하는가를 입증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격상 유사한 학교의 제도적 특성을 검토하거나 학교의 제도적 다양성에 대한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데 도움되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본다.


나는 강원도 횡성의 민사고(民士高)에서 2003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 학교장으로서 학교경영을 수행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교육철학 교수로서 30년 재직한 후에 정년퇴직하고 그해의 7월에 민사고 측의 초청으로 학교장의 직무를 맡았다. 당시에 언론과 교육계에서 전직 교육부 장관이 고등학교의 교장직을 수락했다고 하여 관심이 다소 고조되기도 한 것을 기억한다. 특히 언론에서 민사고의 교장을 맡게 된 동기를 묻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고, 나는 이런 내용으로 대답하였다. 즉,


“나는 지금까지 교육학도로서 살아왔고 대학에서 주로 교육학을 학술적 차원에서 연구하면서 가르쳐 왔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위하여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듯이, 나도 현장을 실험실로 여기고 지금까지 해오던 교육학의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학교의 초청을 반갑게 받아드렸다. 나는 여기서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그 학교에서 많은 것을 공부하였다. 학교경영이라는 자사고의 특유한 행정업무만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의 일상적 생활특성에 익숙하여야 했고, 지역사회, 교육관청 등을 포함한 사회적 관계 등과 같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여건과 환경을 감당하는 안목과태도를 익혀야 했으며, 그동안 이론적으로 생각했던 형식적-비형식적 교육과정의 여러 유형과 지도의 원리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방안과 요령을 세워야 했다. 나는, 어느 모임에서 서울대학교의 교수로서 보낸 30년보다 이 학교에서 4년 반이 더욱 긴 세월처럼 느껴졌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내가 새롭게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논의의 초점은 자사고와 특목고 등의 일반고 전환이 국민교육의 전체적 맥락에서 어떤 장점과 문제점이 있을 것인가를 분석하고 결과적인 정책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일반고로의 전환에서 매우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와 반대로 그것이 매우 심각한 손실을 방지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지 간에 이러한 평가와 판단을 현장자료에 의한 충분한 검토 없이 막연한 직관이나 이데올로기적 유추에 근거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국민교육을 위한 정부의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해당 학교들의 현장적 관찰자료를 모두 어떤 범주별로 분석하는 것은 구체적인 현장의 실상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법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제시되는 계량적 수치나 일반화된 특성은 구체적인 현장의 장점과 단점을 분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민사고는 내가 직접 그 학교의 설립과정을 지켜보았고, 실제로 그 학교의 운영을 4년 넘게 맡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분석에 요구되는 많은 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내가 문화인류학자들이 하듯 현장자료를 전문적으로 모으고 해석하고 체계화하는 문화기술적 기법을 익힌 바는 없기 때문에 다소 거친 면이 있을 것으로 감안하더라도 대상의 집중적인 관찰과 체험의 내용은 관련연구에 상당한 정도로 도움될 것으로 예상한다.


설립자 최명재 파스퇴르 사장과의 만남


내가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설립자인 당시 파스퇴르유업의 최명재 사장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재임시인 1996년 1월 중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최사장은 어느 날 원장실로 찾아와 본인이 특별한 영재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다가오는 3월이면 개학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한국교육개발원에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하였다. 당시의 개발원에 새롭게 설치한 “영재교육특임본부”라는 연구부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왔다고 하면서, 도움을 받고자 한 내용은 학생선발의 방법과 교육과정의 개발에 관한 것이라고 하였다. 새로 설치된 특임본부에 일거리를 가지고 온 분이라서 고맙게 생각하고 그 요구를 수용하였다. 최사장은 연구비 8천만원을 책정하겠다고 하였다. 당시로서는 작은 연구과제는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때 특임본부에 소속해 있던 조석희 박사가 이미 최사장의 영재학교 설립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렇게 최사장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해 3월 1일 삼일절을 기하여 제1기생 입학식을 겸한 개교식에 초청을 받아 횡성의 신설학교를 방문하였다. 한옥으로 지은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있는 마당에서 열린 입학식에는 30명의 학생들이 한복 스타일의 교복을 입었고, 옛날 내가 중학생일 때 것과 비슷한 모자를 쓴 차림으로 식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남학생이었다. 나는 거기서 축사를 맡았고 식을 끝내고 학교법인의 이사장인 최사장의 안내를 받아 학교시설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우리의 전통적 건축양식으로 지은 하나의 웅장한 건물(충무관) 앞에 잔디로 덮은 축구장과 4백미터 트랙을 가진 운동장과 그 옆에는 활을 쏘는 국궁장이 있다. 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면 아들과 함께 숙박할 수 있는 시설(가정교육관)도 얌전하게 지어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체육관, 인조 잔디로 덮은 야구장, 교내의 여러 곳에 12면이나 되는 정구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교사들에게는 대학에서 보는 교수연구실처럼, 각자의 연구실이 배정되어 있었고 학생들은 주로 교사의 연구실에서 수업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교사의 급료는 일반 공립학교의 기준 세배로 지급한다고 하였다. 당시의 월정 연구비를 포함한 서울대학교 교수인 나의 급료보다 훨씬 좋은 수준이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고 교내에서는 서로 영어로 말하도록 하는 규칙을 두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한 생물교사가 영어로 수업하는 순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교사의 영어는 내가 미국 대학에서 논리학 수업의 강의조교였을 때 구사하던 영어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신입생들은 지방 출신교에서 상위 성적 2% 이내, 서울 출신교에서는 4% 이내에 속한 학생들 중에서 선발하였다. 이런 학생들이지만 서로 경쟁상태에 두어 스스로 성적을 관리하도록 하는 제도를 둔다고 하였다. 이사장의 재미있는 설명의 하나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는 몇 개의 교실을 보여 주었다. 교실에는 다섯 개의 학생 자리와 하나의 교사 의자가 있었다. 교실당 수업 인원이 5명이라는 뜻이다. 교실은 5명이 사용하기에는 매우 넓직한 방이었다. 나라니 놓인 학생들의 책상을 하나하나 차례로 가리키면서, 최 이사장은 여기는 1등 자리, 다음은 2등 자리 하면서 다섯 자리를 가리킨 후에, 매주마다 시험을 쳐서 다시 성적순으로 자리를 정해 준다고 하였다.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초대받은 방문객이 그 자리에서 토론을 벌릴 수는 없었다.


운동장에서 웅장한 건물을 쳐다보다가 동남쪽의 언덕으로 눈을 돌려 보면 단층으로 된 한옥들(민족교육관)이 서로 인접하여 모여 있고, 거기서는 주로 대금을 익히는 전통 음악교실도 있다. 안쪽으로 들면 작은 마당을 두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다산 정약용 선생을 모시는 사당도 지어져 있었다. 두 분을 그 학교의 사표로 모신다는 것이다. 학교로 들어가는 길목에 파스퇴르유업의 공장이 있고 그 마당을 지나서 학교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학교는 파스퇴르에서 생산되는 우유의 수익금으로 운영되므로 근처에서 생산현장을 보면서, 그리고 생각하면서 학생들이 드나들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학생들의 수업료, 학습도서비, 교복비, 기숙사비, 매월 가족방문을 위한 귀향 차량비, 해외 수학여행비 등을 포함한 전액을 학교가 부담하였다.


처음에 방문했을 때의 시설과 생활지원은 이 정도였다. 다음에도 몇차례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고 갈 때마다 이런저런 건물과 구조물이 하나씩 하나씩 더하여 갔다. 학교 교실이 있는 본관 건물이 하나(다산관) 더 지어져 먼저 것과 나란히 둘로써 웅장함을 더하였다. 정문에는 이순신 장군상과 정약용 선생상이 큼직하게 자리잡아 위용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운동장을 따라서 들어가는 도로 옆에는 앞으로 이 학교의 출신 중에서 노벨상을 수상자가 나오면 흉상을 설치할 수 있도록 좌대를 열 몇개나 만들어 두었다. 내가 언젠가 포항공대를 방문했을 때 본 것보다 몇배나 많은 숫자였다. 설립자의 대단한 의욕과 소망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12층의 높이를 한 기숙사 건물이 동쪽 산의 허리쯤에 지어졌다. 남쪽의 산 중턱에 체육관이 있고, 옆에는 후에 골프 레인지까지 만들어 졌다. 학교는 갈 때마다 시설들이 늘어났다.


최명재 이사장은 자신이 기획하고 건설하고 학생들을 뽑고 필요한 비용을 홀로 짊어지고서도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였다. 만날 때마다 느꼈지만, 그는 세상에 이렇게 만족스럽고 보람될 수가 없다는 듯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하였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가지고 싶던 좋은 선물을 받은 어린 아이의 얼굴에 가득찬 표정 그대로였다. 그가 하는 말에서 보면, 머리 속에는 십년 후, 이십년 후의 학교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 상태인 것 같았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러던 중 어느날 내게 두 가지의 요청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한국교육개발원의 영재교육 시범학교로 지정하여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개발원의 부서장 회의에 회부하여 동의를 받고 민사고를 한국교육개발원의 영재교육 시범학교로 지정하였다.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교수들로 구성된 민사고 연구자문교수단을 위촉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조직하여 학교의 운영에 관한 연구와 자문에 응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내가 가끔 방문하였을 때, 최 이사장은 사실상의 학교장이었다. 여러 가지의 엉뚱한 발상으로 교사들을 당황하게 하고, 학교 운영에 관하여 외부의 사람들로부터 단편적인 조언이나 정보를 받아 즉흥적으로 시행에 옮기기도 하는 등, 학교의 프로그램은 안정되지 않은 채로 의욕이 앞서기만 하였다. 졸속한 성과를 겨냥한 학사운영이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인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나 자신도 다소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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